1935년 11월 8일 프랑스 출생의 영화배우이자 전 지구적 꽃미남. 70년대 미남의 대명사. 원조 옴므 파탈이자 오징어 공장 명예회장 이자 우리나라로 치면 신성일(영화배우로서의 이미지도 그렇고 사생활도.)

한국에서는 "아랑 드롱"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있었다. 영화 수입업자들이 생각없이 일본식 발음대로 표기하다보니 대중들도 이렇게 발음하게 된 듯. 필름 누아르가 전성기였던 1970년대에는 한국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외국 남자배우였다(할리우드 배우들을 포함하더라도).

알랭 들롱은 1935년 11월 8일 프랑스 일드프랑스의 소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줄곧 계부 밑에서 자랐는데 사이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의 이혼과 모성애에 대한 애정결핍 등으로 학생 시절의 품행도 그렇게 좋지 않아서 학교를 여섯 번이나 옮겼지만 계속되는 비행으로 결국 중퇴했을 정도로 반항아에 문제아였다. 17살엔 외인부대의 낙하산 부대로 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참전했고 전역 후에는 온갖 일을 다 해봤다고 한다. 과일시장 하역 인부부터 레스토랑 접시닦이에 뒷골목에서 건달 생활도 해봤다고 하는데 이때 조직폭력배에 발을 담근 듯. 턱의 칼자국부터 이후 보디가드의 죽음까지 연관지어 볼 때 조폭연루설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어보인다.

이후 알랭 들롱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온갖 일을 하다가 1957년 Y.알레그 감독에게 발탁되어 "여자가 다가올 때"로 데뷔한다. 이 전에 킹콩(1933년판),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유명한 미국영화 제작자 데이비드.O 셀즈닉(1902~1965)에게 발탁되었으나 이를 거절하고 프랑스에서 데뷔했다. 이후 "아가씨 손길을 부드럽게"로 인기를 얻은 후 공전의 히트작 "태양은 가득히"로 세계적인 톱스타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후에도 수없이 리메이크 된 이 영화에서 알랭 들롱은 가난하지만 잘 생긴 남자 "톰 리플리"역을 맡았는데 다부진 몸과 여주인공 마리 라포레에게 키스하던 매혹적인 눈빛으로 전 세계 여성을 사로잡았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어머님 세대의 미남 배우하면 알랭 들롱이었다. 외모만 잘생긴 배우가 아니라 연기력도 호평을 받은 편이었다.

워낙에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인지라 스캔들도 많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의 여배우 로미 슈나이더와의 스캔들. 59년 멜로 영화 "사랑은 오직 한 길"에서 만난 독일 영화계의 스타이자 "태양은 가득히" 에 카메오로 출연한 로미 슈나이더와 사랑에 빠졌지만 이후 결별. 로미 슈나이더는 죽을 때까지 알랭 들롱을 잊지 못했다고 한다.

알랭들롱과 로미 슈나이더

이후에도 브리짓 바르도, 미레이유 다르크, 마리안느 페이스풀과 연애를 했고 공식적으로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었는데 본부인 나탈리 들롱과의 사이에서 낳은 공식적 장남 안토니 들롱은 배우로 활동 중이며 네덜란드계 모델 로잘리 반 브레멘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과 아들도 연예계 준비 중이라고. 또한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멤버였던 니코와의 사이에서 실제적 장남 크리스티앙 아론(아리)을 낳았다. 그러나 이 사생아를 아들로 인정하지 않아 니코는 아들로 인정받게 하려고 친자 인정 소송까지 벌였으나 알랭 들롱은 현재까지 절대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알랭 들롱을 가장 많이 닮은 자식은 이 사생아 자식이라는 것이 아이러니.

나탈리 들롱과 알랭들롱

 



우울하면서도 차가운 특유의 매력과 싸늘한 미모로 이후에는 주로 느와르에 출연했으며 "프렌치 느와르"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푹 눌러쓴 중절모, 깃을 세운 트렌치 코트를 입고 범죄자를 주로 연기했으며 이런 모습은 "시실리안", "암흑가의 두 사람" "아듀 라미", "볼사리노" 등에서 볼 수 있다. 미남 배우의 대명사지만 로버트 테일러나 로렌스 올리비에 같은 귀족적인 미모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그런지 대개 밑바닥 인생을 주로 연기했는데 그게 또 잘 어울린다. 젊었을때 뒷골목 건달 출신인것도 그렇고 외인부대 생활을 해서 그런지 기품이라든가 선량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미모 혹자는 그를 두고 시궁창에서 핀 장미라고 평했다. 나이를 먹은 뒤에는 영화 출연보다는 영화 제작과 복싱 프로모터로 활약했는데 2008년에 아스테릭스 : 미션 올림픽 게임에서 시저로 오랜만에 출연했다.

외모에서도 신의 축복을 받았지만 목소리도 신의 축복을 받았는지 가수 제의도 자주 받았고 나중에는 미스 이집트 출신의 가수 Dalida와 "Paroles Paroles" 라는 곡의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다. 우리 나라에선 무이자송으로 불리는 굴욕을 맛봤지만...

칸 영화제에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 시상자이기도 했다.

알랭드롱 전도연

여담으로, 젊은 시절에 배가 고파서 레스토랑 앞에 우두커니 서 있으면 종업원이 그를 불러 공짜 밥을 먹여주기도 하고 옷가게 점원이 공짜로 옷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의 미모를 보면 그럴법도 하다. 젊은 시절엔 차가운 꽃미남, 조각 미남이었으나 현재는 미중년을 거쳐 미노년으로 진화.

하지만 미모에 비해 인간성이 정말 거지같다는 사실이 익히 알려져 있다. '젊었을 때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그녀들의 사랑이 나를 배우로 만들어줬다'고 말할 정도인데 속뜻은 '나를 사랑하는 여자들을 등쳐먹고 성공했다'는 의미. 그가 거친 줄리엣 그레코, 로미 슈나이더 등은 모두 만났을 당시 알랭보다 훨씬 성공한 스타였음에도 무명 시절 알랭을 진심으로 사랑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나서 차였다. 성공의 발판으로 삼고 나서 새 여자가 생길 때마다 전 여친을 차버리는 행각에도 불구하고 희한한 점은 그녀들 중 알랭 들롱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찌질한 남자들이 여자들을 상대로 '나 나쁜 남자니까 좋아했다간 상처받는다'는 개드립 치기도 하지만 본인이 나쁜남자라고 자처하는 이런 놈들은 거의 대부분이 명확한 찌질이로, 150% 여자들에게 주제 파악 못한다고 뒷담까이는데 비해 알랭 들롱에게 버림받은 여성들은 하나같이 그를 진심 사랑했고 잘 되길 빈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 중 가장 비참한 케이스가 바로 평생 알랭에게 버림받고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죽은 로미 슈나이더. 친구로라도 알랭의 곁에 남으려고 애쓰던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내 삶은 그를 잊지 못해 추락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원조 나쁜 남자이자 마성의 옴므 파탈.

알랭 드롱

그리고 가공의 자기 포장과 언플의 대마왕이기도 하다. 본인이 잘못해 놓고는 이러저러해서 이렇게 됐다고 어떻게든 정당화하는 자기 변호와 미화는 가히 수준급. 또한 프랑스에서도 자신을 3인칭으로 칭하면서 '그는~', '알랭 들롱은~' 등으로 자신을 부르는 행각과 탈세 등으로 무지하게 까이면서도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어내 자기 변호를 하고야 마는 남자다. 심지어 60년대에는 경호원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불려다니면서도 미디어와 공화국 대통령을 상대로 편지를 보내 온갖 거창한 말로 자신이 무죄임을 항변한 바 있다. 그러나 그가 용의자 선상에서 벗어난 것은 어디까지나 수사 결과가 아니라 막판에 결정적인 증거가 사라진 데다 사건에 연계된 권력층 때문이었다. 실제로는 구속 직전까지 고려했던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됐을 정도로 유력한 용의자였다. 게다가 수사가 중지된 것도 마피아가 경찰 내부에까지 압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을 정도. 그야말로 얼굴에서부터 인생까지 영화보다 더 막장인 영화같은 인생을 살아온 인간의 표본이랄까.

한국 방문 전 프랑스 언론에서 보도하기를 아시아 방문하러 간다는데 거기서는 어떤 싸가지로 욕 먹나 봅시다. 역시나 방한했을 때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별난 성격파탄자라서 사람들이 통역가인 이다도시에게 '저 사람 좀 진정시켜라, 같은 나라 출신이잖나'라고 하니 이다도시가 도망치고 싶어했다고 한다. 이다도시에게 '사랑 때문에 여기서 사느냐'고 묻기도 했다나.
이후 프랑스 언론은 '역시나 알랭 들롱의 행실은 유럽 밖에서도 돋보였습니다. 자기가 황제인 줄 알았다네요'라고 보도했다.


알랭들롱

이혼한 부인 나탈리(결혼 전후로 여러 명의 여인과 관계가 있었지만 결혼한 사람은 나탈리 한 명이다)가 있었고, 나탈리와 낳은 아들 안소니 들롱도 있다. 안소니 들롱은 젊었을 때는 '엄마 아빠의 못생긴 점만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중년이 되자 그래도 아버지의 중후한 풍모가 외모에서 배어 나온다. 헐리우드에서 일하지만 인지도나 인기는 그저 그런 정도.

참고로 그가 연기한 역할 중에 실제 알랭 들롱의 성격과 똑같은 캐릭터는 야망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냉혹한 청년 '톰 리플리'라고 한다. 이것만 봐도 성질머리나 인간성이 정말 안습이다.


1991년에 영화 카사노바에서 나이가 든 카사노바 역을 맡았는데 당시 최고 개런티급인 7백만 프랑을 받았다. 이를 두고 프랑스 언론은 이젠 알랭 들롱은 한물갔는데 제작자가 미쳤다고 비아냥을 퍼부었다. 결국 흥행은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아직도 TV 출연 등이 활발한데, 영화에서의 멋진 모습을 기대하는 팬들에게는 슬픈 일이지만 출연할 때마다 한없이 깨는 소리만 해서 있던 팬심도 떨어져나가게 한다고 한다. 역시 얼굴만 핥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현지 이미지를 종합하자면 프랑스의 신성일이라고 생각하면 좋다.

Posted by 홍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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